원래 사람들앞에 나서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편인데 제론이 사은회일을 맡는 바람에 나도 낑겨서 좀 도와주게되었는데,
오늘 그 일이 끝났다. 대부분의 일을 제론이 다했고 또 같이 일한 친구들이 좋아서 힘들진 않았는데 신경쓸일이 이것저것 좀 있어서..휴.. 암튼 끝.
졸업 후 처음으로 뵌, 내가 좋아하던 수학선생님께 후식으로 과일을 갖다드리며 인사를 드렸는데, 내 전화번호를 적어가셨다. 예전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우리를 지도하셨는지를 세세히 기억하던 난, 그때 일을 말씀드렸는데, 교장이었을때보다 그때가 더 좋았노라는 듣기 좋은 말씀도 해주셨다. 예술하는 아이들에게 수학 지도하는게 쉽지 않았는데,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서 꼼꼼히 메모해가며 질문하고 문제풀게 하셨다고.
선생님덕분에 그때부터 수학을 좋아하게 됐다고 이제사 말씀 드렸는데 그 말씀을 드리게 되어 참 기뻤다.
얼마전에 지나가다 발견한, 아파트 뒷편에 배드민턴 가르치는곳 전화번호를 메모해뒀었는데 (언젠간 꼭 배우러 갈 생각에), 선생님께서 우리 동네에 자주 오신다고 말씀하시길래 무슨 일로 오시냐고했더니 배드민턴 치러 그곳에 자주 오신다고, 배드민턴을 가르쳐주시겠다고 하셨다. 세월이 지나도 내게 뭔가를 계속하여 가르쳐주실 분이다.
수학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어 매우 기쁜 날.
게다가 신경쓰인 일도 마감하게 되어 더욱 기쁜 날.
그런데 너무 신경을 썼더니 잠이 안온다...피곤한데..
덧1.
오후에 일하고있는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받을까하다가 한타임이 거의 끝날 시간이라 그냥 전화를 받았는데 낯선 목소리로 내이름을 대며 찾는데, 수학선생님이셨다. 이런. 선생님 전화번호를 미리 저장을 안해놓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례를..
낯선 남자 목소리라 긴장한것 같다며 웃으시는데, 먼저 전화를 주시다니..감격스러웠다.
내 근황을 잠시 물어보시더니 사실 선생님께서는 평교사를 1년밖에 못했고 교무부장에 교감을 거쳐 교장을 하고나니 30년이 지나있었다고 하시며 그래서 담임을 못해봤다고 하신다. 아..그렇구나. 어쩐지 선생님이 반을 안맡으시길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던 청소년기라서 왜 선생님은 담임을 안하실까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런점이 교사 생활이 끝나고나니 약간은 허전한 마음이신가보다.
사은회날도 3학년때 우리반 담임이시던 국어 선생님이 지나가던 내 손목을 잡아 세우시더니 다른 선생님들께 "내가 얘 담임이었잖아..하하하" 이러며 좋아하셨다. 작은 기쁨같은거. 내가 얘가 꼬꼬마였을때 이 아이를 일년이나 보살폈지..뭐 이런 느낌으로.
그래서 수학 선생님은 내가 옛날 과목담당할때 얘길 기억하고 선생님께 아는척한게 정말 반가우셨나보다. 하긴 선생님 말씀을 듣고보니 수학선생님으로 불린 경험도 상대적으로 짧으신듯.
그리고 예전엔 어디 살았고 지금 사는곳은 어디이며 재직 중간에 있었던 선생님께 중요했었을싶은 에피소드도 얘기해주시고 그러며 한참 통화를 했다. 다음주쯤에 전화드리겠다며 통화를 끝냈는데 정말로 찾아뵙고 싶어졌다.
사실 선생님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아무런 정보가 없을때 어르신을 새롭게 알아가며지낸다는게 어떤일일지는 실은 잘 감이 안온다. 약간 긴장도 된다. 아무래도.
단지 어릴때 느낌으로도 공평하고 강직하셨던 분으로 기억나고, 한가지일에 그렇게 대처하신다는것은 다른 많은 일에도 그런 패턴을 가지실거라고 느껴진다. 지금은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거의 스포츠맨으로 사신다니 몸 마음 다 건강하신 분이실거고 그래서 새로운 인연으로 찾아뵈며 살아도 참 좋을것 같은 느낌일뿐이다. 룸메이트도 선생님을 그런 분으로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정말 열심히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셨던 그런 분. 자신의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그런 분.
엊그제 뵜을때
"70살중엔 내가 아마 배드민턴을 제일 잘칠꺼야. 하하" 이렇게 말씀하시며 웃으시는 그 모습이 좋았다.
언젠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때문이다.>
아..맞아. 그렇지.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예전에 알던 사람을 새롭게 다시 알아갈때 그런 설레임이 있었던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사은회를 통해 수학선생님을 이렇게 다시 만나는건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이러한 만남은 항상 나를 설레게한다. 나이 지긋하신, 내가 좋아했던 분의 일생을 나는 다시 조우하게 되는것이고 조금 더 배움의 기회를 갖게되는 것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