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건 식스팩이 아니고..단지 친구 여섯명.'에 해당되는 글 1

  1. 2008.10.29 노년에 행복하려면. 8

노년에 행복하려면.




#1.

중앙일보에 기사가 났더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최소 여섯 명의 친한 사람이 있고, 형광등 갈기나 수도관 누수 고치기 등 일상사의 불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노년에도 행복할 수 있다고. 소득이 삶의 질과 크게 관계가 없으며 인맥과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노년의 행복을 결정짓는다는 연구결과를 영국의 사회운동가가 실험했다며.

친구여러분.
저를 예쁘게 봐주시고, 노년까지 여섯명만 제곁에 남아주세요.^^
(어떻게 이쁜짓을 해야 친구 여섯명을 옆에 묶어 둘 수 있는건지 고민해봐야겠당..)


#2.

지난주부터 5박 6일정도 시어른 칠순때문에 일본에서, 시골에서, 서울에서 온 거의 모든 친척들이 우리집을 들락거리며 복작대며 지냈는데, 호텔에서 칠순잔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머지 모든 시간이 매순간 잔치집같았다.

그와중에 시어른의 큰누님되시는 분이 어쩌다보니 하룻밤을 혼자서 우리집에서 주무시게 됐다.
일찌기 혼자되신 큰고모님이 장마다 고추며 깨, 콩 같은 것을 팔아 오남매를 키워내셨고, 종가집의 8남매의 맏이로 거의 여장부같은 포스를 가지셨던 분이다. 절대 남에게 신세지는 법도 없고 언제나 거의 모든것을 종손인 큰남동생(우리 시어른)에게 양보하고 또 밑의 동생들에게 마저 양보하는 자세로 일관되게 살아오신분이다. 그런 자세로 자식들도 키우셨겠지.

그런데 이번에 우리집에서 주무시게되면서 이분이 치매 초기 증세인걸 알게되었다. 똑같은 얘기 계속 물어보시고 우리 애들을 잘 기억 못하시고 나를 조카며느리가 아닌 조카딸로 착각하시고..마음이 아팠다.

어른들 얘길 들어보니 같이 사는 아들 며느리가 거의 말도 안시키고 간신히 밥이나 챙겨드리는 정도라면서 너무 외로워서 사는게 무섭다는 말씀을 작년부터 하셨다고한다. 그러더니 올해는 치매증상이 눈에 띄게 심해지신거다.

큰애에게 계속 같이 자자고 말씀하셨는데 아무 생각없이 그냥 이 방에서 주무시면 된다고 몇번 말씀드리고 지 방에 가서 잔게 너무 후회된다고 큰애가 미안해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할머니 할아버지께나 잘하라고 말해줄 수 밖에 없었다.

늙는다는건 그런거다. 외로움에 지치면 치매증상도 심해질 수 밖에 없는..
나도 슬펐다.


#3.

큰고모님의 일로 우리 모두 충격을 받았는데, 특히 큰애는 이번일에 많은 생각을 한것 같았다.

어른들이 계시는 내내 곁에서 종알종알 얘기해드리고, 할머니 성대모사로 할아버지를 웃겨드리고, 아가들이랑 잘 놀아주고, 집에서 놀다가 자정이 넘어 내가 호텔로 다들 모셔다주러 나가면 술상 다 치우고 설겆이 해놓고 집청소에 동생시켜서 걸레질까지..더이상 손댈꺼리 없게 뒷설겆이를 맡아서 해놓곤 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이제 정말 다 컸구나 싶고, 그 마음씀이 대견하고, 그동안 어른들께 성심성의껏 기본이라도 할려고 노력한 것을 내가 금방 이렇게 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내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는데 큰애의 세심한 배려덕분에 그모든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4.

몇년전부터 부담이던 큰 행사도 지나갔으니..이제 가을을 실컷 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