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서 산에 못간건'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7.20 놀기. 4

놀기.




북한산.
동호회 친구들이랑 토요일에 북한산에 갈 계획을 짰다. 일본에서 산엘 무진장 열심히 다니던 친구가 일시귀국했기때문에 기념으로 산행을 계획한 것. 산에 거의 다녀본적이 없는 나는 이기회에 등산용 바지랑 티셔츠도 하나 새로 구입하고 장갑이랑 양말까지 샀다. 작년엔가 산 매니아인 사촌 동생한테서 선물받은 17L배낭도 꺼내서 이제서야 택을 떼어내고 그 배낭에 하루 전 날 짐도 꾸렸다. 며칠전부터 북한산엘 무사히(-_-;;) 올라갔다 내려오는 내모습을 상상하며 들떠있었다. 심지어 모자를 찾느라 옷장정리까지 했다. 모자는 못찾아서 그냥 야구모자를 챙겼다. 캡모자뒤쪽에 펄럭이는 치마같은게 달려서 낚시할때 쓸것 같은 모자를 3년전에 선물받은적이 있는데 이것도 이제서야 택을 떼어내고 이렇게저렇게 쓸 궁리를 해보기도 했으나 흔치않은 스타일이라 도로 집어넣고 결국 평범한 야구모자를 선택.


토요일 새벽.
비가 무진장 쏟아졌다. 그래도 산엘 갈꺼라고 생각했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들어봤나. 그런데 7시쯤 문자가 왔다. [산행 취소] 엉엉. 그럼 오늘 놀기로 한 계획은? 이게 궁금한데 새벽부터 물어볼데가 없어 기다리다가 어찌어찌해서 저녁 5시로 약속이 잡혔다. 산엔 비록 못가도 뒤풀이는 한다!!


종로.

광화문에서 지하철을 내려 종각을 향해 걸어가는데 비오는데도 불구하고 우비입고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뛰어가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전대협.  젊다못해 어린 애들이다. 그나이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열정으로 피가 끓지. 난 종로에서 친구들을 만나 차를 마신다.


저녁.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신다. 해물떡찜을 먹자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포기. 아무 맥주집이나 들어가서 셋트1,2,3,...으로 안주를 시키고 맥주를 마시며, 일본에서 들어온 친구를 중심으로 만난거라서 일본얘기에 독도얘기까지 안주로 삼는다.


밤.

한 친구가 국일관 노래방 얘길했다. 나, 노래방 되게 싫어한다. 노래를 못하는데다가 그러다보니 노래방을 기피하고, 또 그러다보니 아는 노래가 없다. 그래도 국일관 노래방이란델 갔다. 무려 12층이다. 천정이랄까 벽이라고 말해야할까싶은 한쪽이 온통 유리창이다. 빗방울 속에서도 종로시내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고 MAX 맥주 선전 광고판도 불을 훤하게 밝혀놨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앉아있었다. 맥주도 별로여서 취하지도 않았으니 무슨 노래를 하겠나. 그런데.. 밤이 깊어지면서 빗줄기가 굵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아예 유리창을 타고 빗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비에 관한 온갖 노래들을 찾아서 예약을 하기 시작했고 우린 합창하듯 비에 관한 노래를 흥얼거렸고, 맥주를 더 마셨고, 시간을 연장했고, 나는 그제서야 서서히 취해가기 시작해서, 여기가 노래방인지 술집인지 헷갈려하며 놀았다.


다음날 아침 9시.
북한산에 가는 줄 알고 일요일로 미룬 수업이 한 개 있었다. 산에도 못갔는데다가, 실컷놀다 들어 온 다음날 아침 9시 수업은..끙..거의 쥐약이다. 그래도 무한한 책임감으로 수업했다. 삼각함수따라 나도 바이오리듬이 최대값 최소값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