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




매달 그 달에 읽은책을 정리하겠다고 결심한게 지난 연말이었는데, 놋북을 새로 장만하고 위아래층으로 끌고 다니며 영화보고, 그동안 소홀했던 메신저에도 꼬박꼬박 접속해선 중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는 만날수가 없으니까 그렇다치더라도 논현동에 사는 친구와는 왜 만나지도 않고 메신저질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일하면서 짬짬이 친구들과 채팅하느라 읽은 책을 정리하기는 커녕 1월엔 책도 거의 안읽었다.


나름 바쁘긴했지. 방학이라서 아침 9시 반부터 시작한 수업이 저녁 6시가 넘어 끝나서 자동차검사도 하마터면 기한을 넘길뻔하며 간신히 받았고, 책이라곤 거의 안읽으면서 풍수인테리어책은 왜 집어들어선 뒤적거리다가 내린 결론. 안쓰는 물건을 다시 정리해보자! 에 꽂혀선 계속 정리를 했다.


특히나 뭘 잘 못버리는 큰애방에서 오래된 물건들이랑 안입는 옷들, 잡지책을 비롯해서 다읽은 책들을 간추려 커다란 박스로 두박스나 버렸다. 서재에서도 책을 골라서 또 버리고, 서재에 있던 오래된 에어컨도 버리고 냉난방기로 교체하고, 인터넷선을 아래층으로 연결하고, 심지어 주방에서 코팅팬이랑 법랑냄비들도 버리고 스텐으로 몇개 바꿨다.


이사온지 만2년이 아직 안됐는데, 버리려고 작정하니 또이렇게 버릴게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따름. 그래도 아마 다시 맘을 고쳐먹으면 버릴게 또 몇상자 나올거다. 차근차근 들춰보고 잠시 생각하고 버리는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느낌이 마치 원페이퍼 보고서를 만드는 기분까지 들었다. 집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면 방 한 개 분량으로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승용차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분량으로 줄어들지도 모르지. 그럼 다 싣고 떠나면되는걸까.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는 내가 워낙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살았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우리집에 와서 거실에 앉으면 곧 이사갈 집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걸보면 그냥 버리는게 내성격인것 같기도 하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형이 어렸을때 목사인 아버지에게서 홈스쿨링을 하는데, 책을 읽고 계속해서 요약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으로 줄여라..또 반으로 줄여서 다시 갖고 와라....그러다가 이제 나가놀아도 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종이를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나도 그렇게 요약하고 줄이고 그러면서 종국엔 나자신까지 버릴수있었으면 싶을때가 있다. 잘안비워지고 잘 안버려진다. 나자신은. 그래서 애꿎은 물건들만 버리는걸까.


실컷 버렸더니 맘은 좀 가벼워졌다. 나의 학생들도 내일부터 개학이라 오전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 산에 갈 생각이다. 산에 다니며 마음도 조금이라도 더 비우고 몸무게도 좀 덜어내야지. 책은 독서회에서 읽기로 한 책이랑 오늘 주문한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까지만 일단 읽기로 한다. 읽을 책을 많이 쌓아놓으면 밖에 나가기 싫으니까.


1월을 정리한 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