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이, 카네이션초를 꽂은 예쁜 케익도 준비해주고 (사랑스러운 녀석들)
영화는 아무기대없이 봤는데 소재가 뜻밖이었고, 재밌었다.
여자들 얘기라서 남편이 얼마나 공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는 칠공주파 아니더라도 디제이가 있는 곳에서 차도 마셨고 내경우는 명동에 있는 심포니라는 음악감상실에서 음악도 들었다. 여고 축제때에는 당연히 합창대회도 있었고 시화전에 남학생들이 와서 장미꽃을 꽃아주기도했다. 여기에 삽입된 음악들을 귀가 닳도록 들었으며 당근, 이종환아저씨에게 엽서도 보냈다. 정성껏. 여러장을 이어붙이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 눈에 띄라고. 하하.
공부한다고 모여서 친구아버지 장식장에 진열된 위스키도 한잔 몰래 따라 마셨고, 무대에 서기위해 춤연습을 한적은 없지만 그 음악들에 맞춰 <코파카바나>에서 디스코를 췄다. 이건 대학초년생때 얘기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그시절즈음엔 거리 곳곳에 항상 시위가 있었고, 골목을 돌아서면 방패뒤에 줄지어 앉아있는 전경들과 마주치기 일쑤였고 시위대 근처를 지나가다가 함께 닭장차에 잡혀들어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하이힐을 벗어들고 뛰어야할때가 부지기수였다. 우리 학교안에선 잡히면 묻지도 않고 끌고 갔고.
사전 정보없이 '괜찮은 영화'라는 귀띔만으로 영화관을 찾아갔다가 가장 감동 받았던 영화는<와이키키브라더스>였는데, 그 이후 항상 이런저런 정보를 가지고 봐서 그런지 보통은 그냥저냥 봤었는데 <써니>는 아무 생각없이 봐서 그런지 좋았다.
우울한 시대지만 경쾌하게 가볍게 그렸는데 난 그게 좋았다.
결말은 영화다워서 좋았고, 가장 좋았던 장면은 나미가 첫사랑을 찾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어린 시절 나미를 벤치에서 안아주던 장면이었다. 어리고 철없어서 돌이켜보면 낯뜨거워지는 사춘기의 '나'와 화해를 해야하는데 그게 잘 되어지지 않는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는 기억들을 한번쯤은 찾아내서 어루만지고 화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나이에도 작년을 생각해보면 부끄러워지는데 그 시절에는 오죽했으랴싶다. 나의 그 시절을 함깨 기억해주는 친구를 만나보면 내가 가진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해줄때도 있다. 같은 장면에 대한 다른 사진을 가지고 있는셈이다.
난 항상 내자신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줘도 그 사실을 잘 믿지않았다. 나같은걸 좋아할리가 없을텐데..뭔가 내가 오해하게 만들었을꺼야..라며 항상 뒤로 물러섰다. 나를 좋아해주던 사람들은 나를 너무 잘 알기때문에 오히려 나를 배려하느라한발 물러서줬던것 같다. 그리고 반복되는 자신없음..소심함..우울함들이 이어졌었지.
그래도 밝은 노래들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친구랑 집에 가면서 <the tide is high>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어느 골목길에선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불러제끼기도 했었다. 수학여행갈때 교감샘 몰래 통기타를 들고가서 밤새 노래불렀고, 독서실 총무오빠때문에 가슴앓이하던 친구도 있었고, 독서실앞의 오락실에서 겔러그에 열중해 10만점 넘기도록 50원짜리 동전을 기계에 계속 먹여준적도 있었다. 전투비행기로 어찌나 총을 쐈는지, 밤에 잘려고 누우니 천장에 겔러그게임장이 펼쳐졌었다. 그땐 그게 일탈이었고 엄마몰래 하던 나쁜 짓이었는데.
주인공 나미 말대로 집안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아줌마일뿐이지만 나 나름대로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거고, 이루어놓은 거라고는 남들과 다를거 하나없는 평범한 일상들뿐이지만, 그래도 친구들을 만나면 열일곱의 내가 얘기속에서 살아나고 열여덟살의 나는 세계문학전집 50권을 독파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미친듯이 읽어댈만큼 꽤 진지했으며, 스물세살의 나는 잠깐이지만 찬란하기도 했었던, 나만의 역사속에서 만큼은 주인공이기도 한거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역사를 가진적도 '있었던' 내가 살아난다. 친구들을 만나 옛날 얘기 하고 싶다. 그애들을 만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건 아닌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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