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다시는 기억하고싶지않은 일이 있는데, 작은 사건으로 인해 그 기억의 봉인이 풀려버렸다. 난 너무 우울했고, 내 마음을 읽은것처럼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고 친구는 나를 위해 금쪽같은 휴일오후를 통째로 할애해주었다.
그곳은 커다란 잔에 커피를 가져다주었고, 오래 앉아있자 예쁜데 맛있기까지 한 카나페도 만들어줬고, 친절에 감동한 우리는 다시 주스를 더 시켜 마시며 오후 시간을 길게 그곳에서 보냈다. 친구가 중간에 메모를 했는데, 나에게 류시화의 <구월의 이틀>이 떠오르게했다.
<구월의 이틀>
ㅡ류시화
소나무 숲과 길이 있는 곳
그 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 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 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
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
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은
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
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
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
이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모래의 강물들
멀리까지 손을 뻗어 나는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손 안에서 부서져
구름이 된다
구름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
비를 내리고 높은 탑 위로 올라가 나는 멀리
돌들을 나르는 강물을 본다 그리고 그 너머 먼 곳에도
강이 있어 더욱 많은 돌들을 나르고 그 돌들이
밀려가 내 눈이 가닿지 않는 그 어디에서
한 도시를 이루고 한 나라를 이룬다 해도
소나무 숲과 길이 있는 곳 그 곳에
나의 구월이 있다
구월의 그 이틀이 지난 다음
그 나라에서 날아온 이상한 새들이 내
가슴에 둥지를 튼다고 해도 그 구월의 이틀 다음
새로운 태양이 빛나고 빙하시대와
짐승들이 춤추며 밀려 온다해도 나는
소나무 숲이 감춘 그 오솔길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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