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살면서 꽤 자주 보는 후배들이 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오래만나서 친구같은 애들인데 자기들끼리는 더 친하고 가끔 날 불러주는 내가 아끼는 후배들이다. 작년 겨울에 갑자기 넷이서 전주로 여행을 갔다왔고, 그 날 이후 우리는 매년마다 일박이일짜리 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제는 걔네들과 남이섬엘 갔다왔다. 거실창을 통해 본 풍경이라 약간 뿌옇게 보인다.



 



남이섬은 참 좋았다. 다른 계절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겨울엔 남이섬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놓는데 운치있고, 강가 별장같은 숙소는 우리들 넷을 단박에 설레이게 했다. 얼어붙은 강물위로 눈이 쌓여있고, 인적은 드물고, 방은 따뜻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산책을 나갔는데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했다. 눈쌓인 남이섬을 꼭 보고 싶었던 터라 폭설이 내리길 기대했으나 눈은 마치 남이섬의 소품인양 잠시 산책하는 동안만 햇살속에서 거짓말처럼 흩날렸다. 눈이 오는걸 담고싶었으나 폰카메라로는 눈이 한개도 안보인다.





우리는 한참을 돌아다니며 걷다가 숙소로 돌아와 숯불위에 온갖것을 구워 먹으며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곁들였다. 쌀쌀한 날씨, 숯불의 열기와 취기로 볼들이 빨개졌고 서로의 이야기에 점점 더 유쾌해졌고 웃음 소리는 높아지고 그러는 중 어둠이 정말로 '내.려.앉.았.다.'


밤이라 더 깊어보였을 강물이 쌓인 눈때문에 신비롭게 하얗게 보였고 강건너 팬션의 운치있는 조명이 동화속에 있는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다시 밤 산책을 나가기로 하고 내가 집을 떠날때 필수적으로 챙겨가는 드립용품들을 주섬주섬 꺼내서 각자가 준비해 온 텀블러에 뜨거운 커피를 가득 담아 들고 다니며 마셨다. 별들이 서울보다는 한결 가까이 내려와 있었고, 오리온좌가 바로 머리위에서 지금이 겨울임을 명료하게 느끼게해줬다. 남이섬의 밤은 쌀쌀하고 커피는 향기롭고 뜨겁고 와인의 기운도 한껏 올라가고 현실감이 점점 떨어졌다. 섬에 와 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격리된 기분때문이었을까..





밤이되니 사람들은 거의 돌아가고 곳곳에 피워둔 모닥불은 혼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어떤 곳은 잔불만 남은 모닥불을 헤쳐가며 마치 별들이 땅에 그려지는듯한 기분을 느끼며 모닥불마다 헤집으며 장난을 쳤다. 섬에 있다는 기분, 이젠 육지로 나가려면 꼼짝없이 밤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기분은 참 묘했다. 통제당하면서 느끼는 안심되는 기분 같은..이상한..


불끄고 누워서도 오랫동안 얘기들이 넘나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새벽에 물안개를 볼 수 있었는데 놓친걸까 생각했으나 강물이 얼지 않았을때나 가능했을거라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커피를 내리고..체크아웃후에 짐을 맡겨두고 이번엔 섬둘레를 걷기 시작했다. 정말 가장자리로만 돌아서 한시간쯤 걸었다.





식전 커피 외에 다시 체크아웃 직전까지 한잔씩 내린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한 개씩 들고 천천히 걷고..시간에 쫓겨 덜말린 머리카락들이 얼어붙는 느낌인데도,  뽀드득소리가 나게 쌓인 눈길, 쨍하게 차가운 기온, 뜨겁고 진한 커피, 마음이 통하는 후배들...뭔가로 가득 채워지는 그런 기분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