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잘드는 창에 커튼을 치고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빛아래에서 책을 읽는다, <구월의 이틀>. 장정일의 책들은 제목이 낯설지않은데도 읽은 기억은 없고 더구나 소설은 처음인데 그 첫 책이 <구월의 이틀>이 되었다.
어제는 독서회가 있는 날이었고, 예약해놓은 <일본열광>을 빌려왔고, 요즘은 후원만하고 활동은 접어두고있는 도친들의 책인 <도서관친구들이야기>를 독서회대장이 한권 주길래 받아왔다. 대장이 한꼭지 썼더니 다섯권을 증정받았다며 다른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기를 당부받았고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가 내가 했던 특강을 에피소드로 써놓은 부분이 눈에 띄길래 늦은 저녁을 먹고있는 아들에게 보여줬다. 엄마이름 나왔다며 신기해하더니 같이 가져온 다른 책을 슬쩍 한권 가지고 들어간다.
이런. 지금 책붙들면 안되는데..싶었지만, 오늘 낮에 컨디션도 너무 안좋았고 그럼 조금 쉬면서 책을 몇장 보면 되겠다싶어서 모른척해줬는데 아침에 보니 꽤 읽은것 같다. 내가 아직 펼치지도 않은 <일본열광>을. 왜 문제 안풀고 책읽고있냐고 말하면 서로 기분만 상하게되니까 살살 돌려말했다. 시험끝나면 읽을 책 몇권 추천해줄까? 라고. 주문해놓으면 안되냐고 묻길래, 일단 읽고 사야할지말지를 결정하자고 말했다. 아이도 동의.
작은아이가 시험이 끝나면 책구매에 대한 회의를 할까한다. 각자 추천하는 책목록을 놓고 이 책을 소장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가족에게 어필하는거다. 그리고 투표를 거쳐 한달에 5~10권내외로 책을 구입하기. 그리고 책값은 각자의 수입(아이들은 용돈)에 대해 비례배분해서 갹출하기. 그러면 책이 집안에 넘쳐나는것도 좀 막을 수 있고, 자기가 필요한 책에대해 다른 가족을 잘 설득하면 다 가질수도 있고. 그 외의 책은 각자 알아서 사기. 그리고 버려야할 책에 대해서도 회의를 해야한다. 다들 자기가 산 책은 버리지 않으려하고 정리하는덴 힘이 드니까.
독서회 10월의 책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우리로서는 드물게 도서관옆의 밥집에서 밥먹으며 책얘기를 했다. 도서관장님의 배려로. 여러얘기들이 나왔다. 항상 그렇듯이.
주를 이루는 의견은 남자 주인공이 대체 왜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마치 예시처럼 표지에 실어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그림에 나온 못생긴 여자가 좀 더 부각된 그림을 보며 더 이해할 수 없다고했다. 독서회 사람들이 미인들만 사랑받아야한다는 의견을 가진건 절대 아니지만 소설가인 작가가 대체 왜, 그렇게밖에 묘사를 혹은 전개를 했을까는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자 읽는 소설에 몰입이 안되었다는 의견도 있었고 작가는 실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랩을 하고 있는건데(요한의 입을 통해) 스무살 청춘의 사랑얘기에 등장하기에는 그 랩이 너무 강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랩을 넘어 설교수준이라는.
일부러 묘사를 약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못생겼어도 사랑받으려면 다른 장점이 있어야하는데 그건 어찌됐든 또다른 매력일 수 있기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얼짱과 몸짱을 요구하는데 그게 개인의 취향이 아니고 사회전체의 요구사항이 되었기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견뎌내기에 너무 버거운 사회가 되고있다. 그들의 세력이 자꾸 커져서 주류가 되면 평범한 사람들이 견뎌내기가 너무 힘드니까 '부끄러워하지도말고 부러워하지도 말면서' 그런 생각들이 다수가 되어 힘을 갖는걸 방지하는 차원에서 우린 그러지말자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거다.
난 여주인공의 편지를 통해 말해지는 사실에 대해 완전 공감했다. 나이드니까 이제 자신이 그닥 눈에 띄는(눈에 확 띌만큼 못생긴) 외모가 아니게 되었다고. 그동안 예뻐져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이제 비슷비슷해져서. 맞다. 이제 내나이쯤 되는 여자들은 거의 다 비슷비슷하다. 좀 더 살이쪘는지 아닌지만 좀 다르다. 그러니 이제 얼굴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참 감사하고 그냥 건강을 위해 너무 뚱뚱하지만 않으면 되는 '편한' 나이가 된거다.
그리고 예쁘지않아도, 그러니까 평범하거나 심지어 못생겼어도 나를 사랑하는 남자 하나쯤은 우주에 존재해야 공평한 일이기때문에 난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그남자가 '하필이면' '미스터 아르바이트'가 될 만큼의 외모를 가졌다해도 말이다. 요즘 애들말로 그 여자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도 모르고. 현실에선 오히려 외모에 신경안쓰는 사람도 꽤있기도하고.
또 많은 여자들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에게 언제나 궁금한 거 한가지는 '내가 지금과 같은 외모에서 훨씬 더 못생겼어도 나를 사랑했을건가요?'인데, 그건 어쩌다 득한 외모가 아니라 내가 지금껏 살면서 만들어온 나 자신을 진정 사랑하냐고 묻고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말을 꺼내고 역질문도 받았다. 남자들도 그렇다고. '내가 지금보다 능력이 부족해도 날 사랑할건지'가 항상 궁금하다고. 그 자리에서 그 질문에 대답한 건 아니지만 (왜냐면 나한테 한질문은 아니니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난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적으로 좀 부족해도 살아갈 수 있다.
아무튼. 독서회 시월의 책은 내게는 가을에 읽은 한 편의 사랑이야기였고 달달해서 좋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후 박민규책은 포기했었는데 덕분에 한권 읽었다.
아직 시월은 며칠 남아있고, 난 <구월의 이틀>과 장정일의 <공부>를 마저 읽을 예정이다. <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것이다>도 간간이 같이 읽고 있는데 어쩌면 구원을 받지도못하고 심지어 다 읽지도 못할지도 모르겠다.
덧1. 추천받은 책들.
|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 여희숙외 지음/서해문집 출판
........티스토리에선 정보첨부가 안되는군..
덧2. 우리 독서회에서는 다음달 책을 도서관에 미리 공지하여 그 책에 관심있는 분들은 책을 읽고 참석할 수 있도록 오픈하기로함. 11월의 책은 <불편해도 괜찮아>,11월 네번째수요일저녁.
|
Recent comment